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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서재

최우수상 수상작 - 『데미안』

  • 작성자 :학부대학 관리자
  • 등록일 :2023.07.27
  • 조회수 :719

  • 데미안(Demian)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경제학과 201920848 오유환

     

    보호자의 안전한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준비하는 이 순간을 청춘이라 부르고 싶다. 보호 아래서 존재했던 청춘은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기에 용감하며, 세상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기에 무지하고 무모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처럼, 청춘은 새로운 위험과 여러 제약을 몸소 겪으며 탐구의 성장 과정을 거친다. 학생이라는 신분에 익숙해져 자신의 삶을 형상화하고 구체화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의 청춘은 내면에서 조용히, 그리고 크게 소용돌이치는 위험과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군대 전역 후, 기다렸다는 듯 불투명한 미래의 불안함은 정의되지 못한 성숙을 동반했고 미숙한 청춘을 부정적인 심연으로 이끌었다. 미숙함은 미래와 현재 그리고 과거의 를 하나의 구덩이로 빠트렸다. 과거 나의 모습에서 반성을, 미래의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현재의 나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좋은 습관을 강화하려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어른다운 어른이 되기 위한 성숙의 기준은 객관적인 지표 없이 모호하여 과거 경험에서 어떤 것을 배워야 하고 고쳐야 하는지 판단할 수 없었으며, 그렇기에 미래의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결국, 현재의 나는 아무런 행동조차 취할 수 없었다. 미래의 나에게 어떤 것이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향을 잃은 나는 조급했고,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흐르는 시간에 의해 침식되었으며, 그렇게 성장에 대한 부담감은 더욱 커져 결국 나를 압도했다.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 올바로 소비되어야 할 나의 청춘은 그렇게 낭비되고 있었다.

     

    소설 <데미안>은 인간의 자아성장과 자아탐구의 주제를 다룬 작품으로, 청춘의 압박 속에서 가치를 빌미로 모든 것에 ?’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할 때 가족에게 위로와 대답 대신 추천받은 책이다. 그 시절 성숙에 대한 혼란은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같았고, 그 불안정한 소용돌이에 직면했을 때 나는 막연한 두려움에 잠식당했다. 긴 시간, 소용돌이에 휩쓸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자신에게 성장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준 것은 데미안이었다. 데미안의 주인공인 싱클레어는 풍요로운 가정에서 막내로 태어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다 열 살 무렵,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계기로, 고통스러운 내면적 고뇌를 통해 밝은 세계 이면에 어두운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심연처럼 벗어날 수 없는 근심과 걱정 그리고 고난을 어둠의 세계라고 말하며, 어둠의 세계 발생 이전을 밝은 세계라 하였다. 싱클레어는 양심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선과 악의 존재를 구별하고 어둠의 세계를 받아들이며 이전의 밝은 세계로 돌아갈 수 없음을 지각했다. 나는 이 부분을 싱클레어에게 있어서 어둠의 세계는 현실이 아니었을까?”라고 해석한 순간부터 비로소 소설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해석의 근거로는 싱클레어가 밝은 세계 어둠의 세계를 자각하고 구별하는 가장 큰 기준이 그가 존재했던 시간과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평온하고 아름다운 공간 속 싱클레어는 10살 이전 가정이라는 안정적인 공간에 존재했으나, 가정을 떠나 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안정적인 공간을 벗어나 외부공간에 노출된 것이었다. 처음 바깥세계에 노출된 싱클레어는 학교 친구들의 인기를 사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부모님의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사실을 숨긴다. 가정이라는 내부공간에서는 잘한 행동이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기에, 행동의 결과가 비교적 받아들이기 쉽고 그 영향이 크지 않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외부공간에서는 스스로 행한 행동의 결과와 영향을 예측하고 판단해야 하지만, 행동에 대한 피드백이 즉각적이지 않을 수 있으며, 심지어는 피드백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는 옳고 그름을 스스로 형성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우리는 이것을 성숙하기 위한 성장의 한 과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싱클레어는 이런 현실 세계를 어둠의 세계라 지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성장했고 성숙해졌기에 어린 그가 밝은 세계라 칭했던 무지의 순수함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다행히도, 이 무렵 싱클레어는 데미안이라는 정신적 조력자를 만나게 되어 세계의 이중성과 인생의 복잡성 같은 철학적 담론을 통해 정신의 내적 탐구를 하게 된다. 나 또한 내면을 관철하는 데미안의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대답하며, 간접적인 조력자로서 도움을 받았다.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이 바뀌고, 성숙한 사람의 정의가 달라지기 때문에, 나는 소용돌이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 성장이라고 생각했기에 어떻게 행동하고 사고하는 것이 성숙인지 정의할 수 없었던 나는 성장을 포기했고, 그렇게 소용돌이 한가운데 고립되어 있던 것이었다. 나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막연한 두려움이 가치의 모호성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다시 데미안의 뒤를 쫓았다.

    “‘금지되었다라는 것은 영원하지 않아. 바뀔 수 있는 거야. 우리 누구나 자기 스스로 찾아내야 해,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어 있는지

    -데미안, 헤르만 헤세-

     

    늙은 관념에서 살고 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면 자신에 이르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소설 <데미안> 속 가장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로, 이 한마디는 이미 내가 성장을 마주할 준비가 됐음을 일깨워주기 충분했다. 소위 논하는 성숙은 윤리적이며 이성적이고 현실을 이해하고 적응한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단순하고 보편적인 성숙의 사전적 의미를 찾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그 상태가 내게는 어떻게 보면 상당히 폐쇄적이고 전통적인 것처럼 느껴졌기에, 사회적으로 합의된 형태의 성숙보다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차원에서 그 의미를 이해하고 싶었다. 나는 성숙을 정의하지 못해 성장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이미, 어둠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현실 속에서 성숙의 가치를 탐구하며 성장의 소용돌이 속을 헤쳐나가고 있던 것이다. 복학 후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와 같은 사소한 질문부터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 ‘다수의 기대에 부응하는 존경받는 사람이 된다면, 남을 돕는 선한 품성을 갖춘다면, 현실에 적응하고 안주한다면,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와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며 어두운 심연에서 벗어나려 일찍이 노력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데미안, 헤르만 헤세-

     

    이미 성장 과정에 있음을 자각한 뒤로 나는 미약하게나마 심연의 압박으로부터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감은 그저 감정에 불과했기에, 직접적인 성장의 방향을 제시해주지는 못했다, 성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으며, 불안하고 불완전했다. 데미안은 그런 내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의 모습을 구분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순간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을까?”라는 감탄과 함께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얼얼한 기분까지 들었다. 나를 구분할수록 과거의 나에 대한 후회만 가득해지고, 그것은 본질적인 현재의 나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래를 상상할 수도 없다. 구분하는 것을 멈추니,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를 만든 경험으로, 미래의 나는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현재의 나는 그 생각을 실천하는 나로서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결국, 어른스러운 어른, 성숙함 등과 같이 확립되지 않은 방향을 확인하기 위해 스스로 많은 질문을 던진 것들이 나의 행동 양식을 통해 이미 대부분 정해진 상태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심연의 청춘 속에서 흘러나온 성장에 대한 불안감은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로 번져, 어느 방향으로 가야 옳은지 갈피를 잡지 못한 나는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것은 좁아진 시야가 만들어낸 착각이었다. 나는 오히려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성숙이라는 개념에 대해 사회적 합의인 늙은 목록을 탈피하여, 본질적인 개념에 접근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또한, 분리된 자아들을 일원화시킴으로써 성숙에 대한 하나의 기준점을 에게서 발견했다. 그제야 자유로워진 청춘과 함께, 압박의 소용돌이 또한 깔끔하게 사라졌다. 심연이라 느꼈던 내면의 거센 소용돌이는 늙은 목록의 틀이었으며, 그것을 직면하고 없애 나만의 궤도를 만든 것이야말로 아브락사스로 향하는 알을 깨는 과정이었다.

     

    소설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어렸을 때부터 풍족한 삶이 충족되었기에 내면을 탐구할 시간과 여유가 충분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서적 측면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온전히 공감하기에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그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사교육비 지출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학생은 20살 이전까지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과거를 되돌아볼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인공 싱클레어처럼 전통과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있다는 전제가 성립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유한한 삶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필요로 한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그러한 시기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을 가진 청춘인 것이다. 청춘은 10대 후반부터 20대 전반을 일컫는데, 이는 소설 <데미안>에서 현실을 의미하는 어둠의 세계를 맞이하는 시기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이라는 조력자를 통해 진지하고도 수월하게 내면적 고뇌를 진행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인생에 가치관을 갖는 것조차 의미를 두지 않고, 시간 낭비라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 또한 그러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없었기에 성장하기를 두려워했고, 결국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으며 자신을 잘 대처하고 있다고 합리화했다. 미숙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불안감에 맞서지 못했던 나의 과거는 데미안이라는 조력자의 힘을 빌려 극복해낼 수 있었다. 소설 <데미안>은 자아성장과 자아탐구 외에도 사랑과 욕망 그리고 인간관계 등과 같이 인생 전반에서 명확히 정해진 답은 없지만, 답을 내리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고 생각해야 할 필수적인 요소들을 깨닫게 일깨워주며 그에 대해 풍부하고 포괄적인 시각을 갖고 바라볼 수 있도록 독려하기에, 청춘을 자유롭고 의미 있게 형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이 책을 나는 감히 작은 청춘의 서재라 부르고 싶다.